개인정보의 잊힐 권리, 내 정보는 언제 삭제될 수 있을까?
인터넷과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우리는 매일 수 많은 개인정보를 남기게 됩니다.
회원가입을 할 때 입력한 이름과 연락처, 쇼핑몰의 구매내역, 병원 예약 기록, 앱 이용기록, 게시글과 댓글까지 모두 디지털 흔적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정보들이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미 목적이 끝난 정보인데도 계속 보관되거나,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정보가 온라인에 남아 있다면 개인의 사생활과 권리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잊힐 권리”입니다.
1. 잊힐 권리란 무엇일까?
잊힐 권리란 쉽게 말해,
개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해 삭제, 처리정지, 접근배제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즉, “내 정보가 계속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지워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개인정보 보호법에서 “잊힐 권리”라는 표현이 하나의 독립된 조문으로 딱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여러 권리와 의무를 통해 비슷한 취지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정보의 정정·삭제 요구권
개인정보 처리정지 요구권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동의 철회권
보유기간 경과 또는 처리목적 달성 후 파기 의무
온라인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
개인정보 보호법 제36조는 정보주체가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해 정정 또는 삭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삭제 시에는 복구 또는 재생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 개인정보는 언제 삭제되어야 할까?
개인정보는 수집했다고 해서 계속 보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처리 목적이 끝났거나, 보유기간이 지났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파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입니다.
회원 탈퇴로 서비스 이용 목적이 끝난 경우
이벤트 종료 후 당첨자 관리가 끝난 경우
상담 목적이 완료된 경우
법정 보관기간이 지난 경우
가명정보의 처리기간이 종료된 경우
개인정보 보호법 제21조는 보유기간 경과, 처리 목적 달성, 가명정보 처리기간 경과 등으로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되었을 때 지체 없이 파기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또한 파기 시에는 복구 또는 재생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 삭제 요구가 항상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보주체가 삭제를 요구한다고 해서 모든 개인정보가 바로 삭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다른 법령에서 일정 기간 보관하도록 정한 정보는 삭제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전자상거래 관련 거래기록, 세법상 증빙자료, 분쟁 대응을 위한 법정 보관자료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개인정보 처리정지나 동의 철회 요구도 법률상 의무 이행,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 보호, 공공기관의 법정 업무 수행, 계약 이행에 꼭 필요한 경우에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37조는 정보주체가 처리정지나 동의 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일정한 예외 사유에서는 거절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잊힐 권리는 “무조건 모든 기록을 없애는 권리”라기보다는,
불필요하거나 부당하게 남아 있는 개인정보에 대해 삭제·정지·차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에 가깝습니다.
4. 온라인 게시물과 잊힐 권리
잊힐 권리는 특히 온라인 게시물에서 자주 문제 됩니다.
과거에 본인이 작성한 게시글이나 댓글이 있는데, 오래된 계정이라 로그인할 수 없거나 사이트가 폐쇄되어 직접 삭제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게시판 관리자나 검색서비스 사업자에게 접근배제를 요청하는 방식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KISA는 2025년 10월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안내서”를 게시한 바 있으며, 이는 본인이 과거에 작성한 게시물에 대해 직접 삭제가 어려운 경우 접근배제나 검색배제 요청 절차를 안내하는 자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원본 삭제”와 “검색 노출 차단”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원본 게시물이 삭제되면 해당 정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고, 검색 노출 차단은 검색 결과에서 보이지 않게 하는 조치입니다. 상황에 따라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필요할 수 있습니다.
5. 가명정보와 잊힐 권리의 관계
가명정보는 개인정보를 바로 알아볼 수 없도록 일부를 삭제하거나 대체한 정보입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일정한 요건 아래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명정보라고 해서 마음대로 보관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명정보도 처리 목적, 처리 기간, 제공 여부, 위탁 여부, 안전성 확보조치 등을 명확히 관리해야 합니다. 첨부된 가명정보 처리 관련 자료에서도 개인정보 처리방침에 가명정보의 처리 목적, 처리기간, 제3자 제공, 위탁, 처리 항목, 안전성 확보조치 등을 포함하도록 예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명정보를 처리할 때는 추가정보를 분리 보관하고, 불필요한 경우 추가정보를 파기해야 하며, 접근권한도 분리하는 등 안전조치가 필요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제29조의5도 가명정보와 추가정보의 분리 보관, 불필요한 추가정보 파기 등을 안전성 확보조치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가명정보 활용에서도 핵심은 같습니다.
필요한 목적 안에서만 쓰고, 필요한 기간 동안만 보관하며, 목적이 끝나면 안전하게 파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 기업과 기관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개인정보의 잊힐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려면 기업과 기관은 단순히 “삭제 버튼”만 만들어서는 부족합니다.
다음과 같은 관리체계가 필요합니다.
첫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을 명확히 정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보관할 것인지, 목적이 끝나면 언제 파기할 것인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정보주체의 권리행사 절차를 쉽게 안내해야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38조는 정보주체가 열람, 정정·삭제, 처리정지, 동의 철회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절차를 마련하고 공개해야 하며, 그 절차가 수집 절차보다 어렵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셋째, 삭제가 어려운 경우에는 그 사유를 명확히 안내해야 합니다.
법령상 보관 의무가 있는 경우라면 별도 분리보관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넷째, 가명정보를 활용하는 경우에도 처리기간, 파기, 접근권한, 추가정보 관리까지 함께 점검해야 합니다.
개인정보의 잊힐 권리는 단순히 “내 정보를 지워 달라”는 요구를 넘어섭니다.
개인의 삶과 과거의 기록이 디지털 공간에서 영원히 따라다니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권리입니다.
물론 공익적 기록, 법령상 보관 의무, 계약 이행 등으로 인해 모든 정보를 즉시 삭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부터 보관, 이용, 제공, 파기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개인정보 보호의 핵심은 결국 하나입니다.
필요할 때만 수집하고, 목적 안에서만 이용하며, 필요가 끝나면 안전하게 지우는 것.
이 원칙이 지켜질 때, 디지털 사회에서도 개인은 자신의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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